30- “내가 살아온 인생” 을 적어보려 합니다 – 김복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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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해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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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아온 인생을
  적어보려 합니다. ★

보잘없지만내가살아온인생의흔적을적어보려합니다.

 

나는남편의직장이동두천내에주둔해있는미
2사단에근무하고있기때문에

어쩔수없이동두천에서신접살이를꾸리게되었다.

 

8년을그곳에서살다가큰아이가초등학교에들어간지일년반만,에

서울로이사를오게되었다. 

그이유는동두천이기지촌이다보니아이교육상서울이더좋을것이라생각했기때문이다.

지방에서
8년을살다서울에올라와보니그새시골여자가되어있었다.

서울에와서둘째는초등학교입학을했고,
막내딸은유치원에입학을하였다.

그중에막내딸유치원의자모가시골스런모습이남아있는나에게  접근을해왔다.

그녀는나에게꽃꽂이강습이있는데들어보라고권유했다.

그권유에나는자모들이모인자리에참석을하게되었다.

 

어떤가정에자모들이옹기종기모여있었고긴교제상에는화기와꽃들이놓여있었다. 

그곳에서선생님이꽃꽂이를가르쳐주신다고하였다.

나는꽃을아주좋아하는사람이라그수업에한눈에반했다.

바로나도하겠다고신청을하고그때부터단한번도수업시간을빠지지않고
3년을배웠다.  

 내가꽃꽂이를배운것은사범이되려고배운것이아니라  취미로배웠던것인데,

어느덧나는꽃꽂이사범자격증까지받게되었다.

그동안안정된가정으로돈구애안받고잘살아왔었는데어느날청청병력같은소리가

남편한테서들려왔다.
미군부대가  철수한다는말이었다.

그이유는미국대통령후보로출마했던카터가공약으로미군부대를한국에서철수한다고

했었던것이다..
그런데바로카터가당선이되었다.

만약그공약이실현되면꼼짝없이미군들이한국을떠나게되고
,

미군부대관련  종사자들은모두다직업을  읽어버리게되는판국이었다.

아직아이들은어린데남편이직업을잃게되면어떡하나근심이태산이었다.

우리한테위기가닥쳤구나,
라고속으로  한탄하였지만, 한탄만하고  있을수만없었다.

 

나의엄마는우리들한테강한면이있다더니,
위기가닥치니  나한테도나타나기시작하였다.

나는꽃꽂이사범증을서랍속에넣어두었었는데,
조심스레그것을다시꺼내보았다.

처음에는걱정된  마음으로나의올케들에게  꽃꽂이하는방법을가르쳐줄테니 

우리집으로모이라고하였다.

처음이지만,
꽃꽂이하는방법을올케들한테가르쳐보니까설명도생각보다잘되고

꽃꽂이도예쁘게되어서첫강연은성공이였다.  첫강연이성공하고나니까자신감도생겼다.

그다음엔우리동래양장점이있었다.
양장점에창문에빈화기가놓여있길래,

내가꽃꽂이선생님이라고알려주며,
양장점여사장님한테꽃을꽂아주겠다고말을했다.

여사장님은너무좋아하면서예쁘게꽃아주세요하고하기에부탁을받고

남대문꽃시장에가서꽃을한아름사다가화려하게꽃아주었다.

그것을계기로그여사장이동래엄마들을모아주어그때부터꽃꽂이선생으로

활동을할수있게  되었다. 마침그때한국에꽃꽂이붐이일어났다.

그런데놀라운것은미군이철수를안하고있었다.
나중에알고보니

박정희대통령님께서미국카터대통령한테많은사정을말해서  무마되었다고한다.

그때를시작으로꽃꽂이선생을
15년동안하고있었는데,
어느날남편이술이조금취해서

귀가를했다.  느닷없이남편은미군부대내에꽃집낸다하더라.

미군부대내에꽃집을낸다는말을듣고,

나는담당자에게  나를추천하라고말해달라고하였다.

남편은나에게  당신이꽃집을어떻게하냐며말만하고넘어갔다.

그렇게일주일후남편은그럼당신이해볼래?
하길래당장에내가해볼깨요.
라고말했다.

남편은그럼그동안활동한기록들을잘정리해서  달라고  하였다.

담당자인미군장교가원더풀외치면서나를추천해주었다.

그때부터나는꽃꽂이선생을접고상업으로전향을했다.

분야가다르니모든것이서투르고장사라는것이너무어려웠다.

무엇보다손님들이미군이였기때문에첫째는언어가문제였고,

둘째는미국사람들의취향을잘모르겠고, 

셋째는물건의가격을어떻게정해야할지그것도어려운과제였다,

그외에도이루혜아릴수가없을정도로어려움이있었다.

 

물건을팔려고하니,
언어가통해야  원하는물건을팔지,

도대체알아들을수가없어가슴만꽁당꽁당뛰기만하고어떻게해야할지몰랐다.

그러다가  종이를내놓고글로써달라고하기시작했다.

글을보니알수  있었기때문이였다. 말로하면말이너무빨라  한마디도들리지않았었다. 

이러한과정을지나  상인으로자질을갖추는데  몇개월이걸렸다.

 

하다보니꽃장사가너무잘되서종업원을두어도손이모자랐다.

이에남편한테당신사업그만하고나를도와달라고제의를하였다.

남편은내제의를받아들이기가어려웠던것같다.
자신의일에,

아내의일까지도와주려니아무래도무리가왔고,

남편은결국내제의를따라  사업을접기로결정을내렸다.

남편한테미안한마음이들기도했다.

매일새벽
6시에나는남편과함께남대문꽃시장를한두바퀴돌면서꽃을  차에실고

상업지인동두천으로달려갔다.
그후
10시전에들어가서가게문을열고꽃을가다듬어

꽃냉장고에넣고나서,
꽃을꽂아장사  준비를해놓아야했다.

그렇게저녁  7시30분까지일하고나면, 집에는저녁 9시나돼야  도착한다.

일년에쉬는날은  명절때   4일만쉬고일을계속하였다.

그렇게
15년동안꽃꽂이전문가생활을열심히일을하며보냈다.

그대가로첫아들을미국으로유학을가서전자공학박사를취득했고,

현제삼성반도체에서상무로근무하고있다.
다른두자식도무사히대학을졸업시켰다.

꽃을팔아자식들교육을무난히시킬수있게되었다.  

마지막으로삼남매결혼까지다시키고분가를시켰다.

 

남은건우리두부부였다.
계속해서먼길꽃집을다니며열심히일하고살던중

내나이
60세가되던해어느날,
불행하게도갑작스레찾아온병이있었다.

 

나는손목이  너무아파져서가위질을할수가없었다. 

병원에가보니의사선생님은손목수술을하라고권하였다.

여기저기병원를찾아다니며검사를해보았다.
그러는동안에내몸은전신이마비가오고

온몸은붓고통증때문에견딜수가없었다.

마지막에찾은병원이서울안암동에있는고대병원이었다.

그병원에서휠체어를태워가지고여러가지종합검사를하였는데,

검사결과그병은  루마티스관절염이라하였다. 그병에대해집중적으로치료를하니

손가락이부드럽게움직이기시작하였다.
그리고발도디딜수가있어중풍환자같이

어기적거리며걷는것도할수가있었다.
시간이지나자온몸이부드러워지면서

내가스스로머리를감을수가있었다.

내가병마에시달리는동안  내남편이 3년이지나도록밥을지어주었다.

 

그때내나이
63세였는데,
어쩌다이렇게폐인이된건지,

 마음이슬퍼지고내인생의후회가밀려오고있었다.

 

누구를위해서이렇게정신없이살아왔는지~~~

지금와서나에게남는건병뿐이었다.
나는내가이렇게죽어갈수는없다는생각에
.

이제부터나를위해인생을살아보자하고  찾은것이실버타운이었다.

첫번째찾은곳이약수동실버타운이다.
하지만  공기더좋은곳으로가길  원했다. 

마침그때,
분당서울시니어스타워가입주를작년에하였다는말을듣게되였다.

바로달려와세대를보니부부가  살만하게보였다. 당장에계약금을걸고 2004년 5월23일에

입주를하려하였다.
하지만남편의반대가매우심했다. 

노인들만사는곳에남편은못간다고펄펄뛰었다.

나는이곳에가야만살수있을것같았기때문에 

남편에반대를무릅스고나는가야겠다고  주장을했다.

나중에는안가겠다면따로살자고까지말하니,  어쩔수없이남편도따라왔다.

환자의몸으로입주를하고보니여러회원님들보기에부끄럽고속상했다.

회원님들이나이도물으시고들어온사유도물어보시고,
나에   궁금한게많으신것같았다.

내나이를말하니  꽃띠가왔다고하시며그나이에왜  이리빨리왔냐고더욱궁금해하셨다.

 

내가이곳에들어온이유는첫번째  밥을편히먹는것이었다.

하룻밤을자고아침에일찍일어나식당에를내려가보니식당직원들이상냥한목소리로

맛있게드시라고인사를하며  식사를잘하도록도와주었다.

그런모습을보고어디서  이렇게  대접을받겠나생각하니, 바로여기가천국이구나라는

생각이들면서감사한마음이들었다.

 

하루이틀살다보니남편이하는말이이곳이  너무좋다고했다. 남편은남편친구들한테 

매일자랑하기바빳다.
남편한테  내선택이  좋았지라며  한마디  해주었다.

 

시니어스에서살면서여기서짜여진스케줄대로참석하면서즐거운나날들을보냈다.

 60세가되도록운동도못해보고  살던내가하루하루운동을하니몸이조금씩나아지는것을

느꼈다.
운동도종목마다가르쳐주는선생님이있어서

제대로코치를받아잘배웠다.
(탁구,
포켓볼,
수영,
헬스,
라인댄스등)

 

나는탁구와포켔볼대회에도참가하고,
라인댄스시합에나가서상도타며 

즐거운시간을보냈다.
노래교실이있어내나이를잊은듯노래를신나게부르고나면

내몸과마음이정화가된것같이깨끗하고기분이좋아진다.

컴퓨터도컴맹이였는데컴퓨터교육이있다고신청을하라고하기에내가할수가있을까

 두렵지만한번해보자하고신청을했다.

 

컴퓨터를배운다하니큰아들이컴퓨터와복사기를사보내주었다.

배워보니너무나재미있고신비스러움에푹빠져있었다.

그렇게배운컴퓨터로나의모든추억을시디에담아저장해놓았다.

아들과딸한테내컴퓨터실력을보여주었더니어머니!
정말자랑스럽습니다라고

극찬을해주었다. 

컴퓨터를열심히배워서손녀와손자들한테이메일도보냈더니우리할머니멋있다고

친구들한테자랑도하였다한다.

아이들하고도이야기할거리가있어너무좋고아이들에게답답한할머니가되는것을면했다.

시니어스에서살면서제일잘배운것이라고생각하는것은컴퓨터와수영이다. 

수영장에한번도가보지못한내가,
여기서는수영을자유영과배영을배워매일수영을하면서

몸관리를잘하고있다.
또한날마다샤워를할수있는것도  좋았다.

  

내가지병인루마티스관절염이있다보니아침이면몸이뻣뻣해지는증상이있어날마다

 남편이온몸을주물러주어야일어나서활동을할수있다. 남편이없으면살기가힘든몸인데

남편이곁에서도와주어잘살고있다.  

어르신들은내가건강하니참좋아보인다한다.   

나는내명이다할때까지루마티스관절염약과혈압약은먹어야한다고한다.

죽을수밖에없던몸이이곳에와서제
2의인생을멋지고아름답게건강해진몸으로

잘살수있는축복을누리며살게되었다

 

이곳으로인도해주신분은바로하느님의은혜인것같다.

  

시니어스타워김복영

옮겨온 글

앞으로 남은 여생 행복하시고, 더욱 건강 하시기 바라면서..
외사촌 동생(柳)

항상건강하시고날마다즐겁고행복하소서

“아침해 카페”에서 CK Yu
(유찬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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